2026-06-16
조회수 119

이번 돋움여행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만나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따라 ‘광주의 시간’을 천천히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달려오던 우리는 ‘오디세이학교의 시간’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나와 우리에게 돋움이란 무엇인지 질문 던지며, 배움의 마음을 북돋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내가 돼야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느슨한 일상을 흔들어 다시 나를 일깨우고 힘을 돋을 수 있었던 돋움여행” (오디세이 민들레 12기 우주)


이렇게 시작한 우주의 에세이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문장이 뭘 의미하는지 물었다. 우주의 부모는 우주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표현한 문장임을 알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놀랍습니다.

전환여행으로 새롭게 먹은 맘이 흐릿해질 즈음,
일상을 흔들어 깨우는 돋움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동건이의 표현처럼, 이제는 스스로를 키워내는 주체가 되어 자기 삶을 운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광주로 돋움여행을 다녀온 후 ‘나에게 돋움이란’ 주제로 에세이를 작성하고 나눴습니다. 여러 학생의 에세이를 학생 동의를 받고 공유합니다.


<내 돋움의 발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5.18민주화운동을 공부하기 위한 4박 5일간의 여행, 돋움여행을 다녀왔다. 그 이름 그대로, 나는 여행을 통해 돋아날 수 있었다. 내 돋움의 발판이 되어준 것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나는 5.18을 공부하며 배움의 동기를 얻음으로써 돋았다. 나는 왜 배우는가?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나는 그 답들 중 하나를, 여행을 통해 깊이 느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게 그 답이다. 내가 경험한 것이 힘이고, 내가 보고 들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배운 것)이 힘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과거 5.18이 조금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해설사 선생님의 5.18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또, 내 기억에 남아 깨달음을 준 이야기가 있다. 여행 당시 꽤 많은 분의 입에서 언급된 사건에 대한 말이다. 12.3 비상계엄 사건, 그 당시 우리가 민주주의국가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알았고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5.18 정신 덕분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배웠기 문제의식을 느꼈다. 배웠기 때문에 행동했다. 내가 배운 것은 곧 내 생각의 일부가 되어 말과 행동을 결정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는 내가 어떤 힘을 어떻게 기를지와 직결되는 일이라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 올바른 배움이 올바른 힘을 키우게 해준다. 우리가 역사와 그 이외의 많은 것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배우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은 배움의 원동력이 되었다.

 

더해서, 나는 여행을 통해 가슴으로 5.18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낭독하며, 그림책을 보며, 5.18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며 많은 감정이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 당시 선교사님들의 이야기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의로움에 대한 내용을 들으면서는 경이도 느낀 것 같다. 내가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할 수 있으려면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또한 새로운 배움이었다. 배움의 동기를 깨달으며 함께 얻은 배움은 더 와닿았고 큰 의미가 있었다.

 

두 번째로, 나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돋았다.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의 의미는 길잡이들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에 있다. 오디세이 교육은 친구와 함께해야 효과 있는 교육이라는 말씀이다. 또, 그렇기 위해서는 친구와 (공적으로라도) 친해져야 한다는 말씀에도.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이 배움의 준비인 셈이다. 마니또를 진행하며 누군가와 더 교류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함께 식사를 하는 것. 경찰과 도둑 게임을 하는 것. 소소할 수 있는 활동들이 쌓여 내가 조금이나마 더 친구들과 친해졌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친구들의 생각을, 자세를, 마음가짐을 본받아야겠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친구들과 다음 배움의 준비를 다지고 친구들에게 직접 배움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돋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완전히 돋아났는가? 아니다. 그러나 돋움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돋아 나는 것은 자기 스스로만 이뤄낼 수 있다. 5.18에 대한 배움과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 이런 자극은 여행을 통해 들어오지만, 그걸 내가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 비로소 돋아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돋움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 나타난 상태가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해내는 행동이라 말할 것이다. 돋움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라면,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을 곱씹고 사유하며 계속 돋아 날 수 있다. 발판은 준비되었으니 하나하나 디디며 돋아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내게 돋움여행은 그런 의미가 있다.

 

내 돋움에 도움을 주었던, 그리고 주고 있는 길잡이와 친구들, 배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5.18열사님들께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준 광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에세이를 마친다. (오디세이민들레12기 은서)



<돋움의 과정>


전환이 필요했던 3월, 완벽하게 전환을 하고 온 그때 여행처럼 이번 5월 돋움여행 또한 해이해진 마음을 돋우는 여행을 바라며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전환‘과 ’돋움‘ 그 둘은 큰 차이가 있었다. 흰 종이에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마구 쓰여진 종이를 지우고 수정하여 완성해 는 과정이 더 어려운 것처럼.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시작 후 다시 다잡는 게 더 어려운 일이란 걸. 새롭게 전환시키는 것보다 전환의 마음을 상기시켜 돋움을 쌓는 게 더 어려운 일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이 여행은 돋움을 차곡차곡 모아 오는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그때는 몰랐다.

 

1. 역사를 돋우는 과정

- 소년 부르기

이번에 우리가 여행을 떠난 곳은 광주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배우기에 아주 적합한 지역. 광주의 따스한 분위기가 담긴 마을을 둘러보며 첫날 우리는 일정을 마친 후 <소년이 온다>를 낭독하는 ‘소년 부르기’ 시간을 가졌다. 찬 지하실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을 모아 한 자 한 자 낭독할 부분을 써 내려갔다.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내가 써 내린 문장을 읽으며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렸다. 읽는 순간 문학과 성장 시간에 들었던 연설에서 한강 작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저 문장은 ‘이미 죽은 네가 죽어가는 나를 살렸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너의 고통을 되갚기 위해서라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나에게까지 와닿았다.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을 다해 목소리를 울리며 소년을 불렀다. 46년 전 이곳에서의 오월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때로 돌아가 1980년의 광주에게 우리의 온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 광주의 오월

처음 상무관에 갔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소년이 온다> 속 동호가 누나들과 시체를 닦던 그 체육관이 여기라고? 그 시절 속 그 공간에 내가 있다고? 이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겨기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상무관 계단에 앉아 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역사의 장면이 담긴 5.18영상을 보는 그 순간에도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곳에 채워졌을 떠난 이들과 그들을 찾으러 온 가족들. 나라를 위해 나갔다가 나라가 죽여서 돌아온 이들이 있었던 곳. 어떻게 이런 작은 공간에서 시체를 닦고 내 가족을 보내주고 울면서 버텨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왜 이래야만 했을까.

 

믿고 싶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 속 모든 장면이 상상되어 마음이 아파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한 번도 누리지 못하고 가신 떠난 이들께 온 마음을 바쳐서 전하고 싶었다. 당시의 사회 속에서 힘써주셔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어 죄송하다고.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평화의 민주주의는 그때의 사람들이 목숨바쳐 싸운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무관에 다녀온 뒤 찾아간 전남도청은 마음이 아픈 것에서 멈추지 않고 부서져 으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하던 이야기와 당시의 사진들이다. “엄마 여기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한테 잡혀가는 거예요? 저기 저도 보고 싶어요” 순수한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그렇다고 말했고, 아이가 가리킨 나무 상자처럼 생긴 곳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으니 임산부와 노약자는 시청에 주의 하시오’라고 써진 곳이 있었다. 아이는 자기도 본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이를 막았고, 어린이가 못 보게 높이가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게 만들어진 상자에서 나는 5.18을 봤다.

 

솔직히 그걸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그저 죄송하고 슬픈 마음밖에 들지 않았는데 사진들을 보자마자 온몸으로 5.18을 느꼈다. 정말 죽음이었다. 쓰러진 사람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고 올곧게 누운 자세가 아닌, 이리저리 뒤엉키고 흐트러진 자세의 사람들이 모여 누워있었다.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관에 눕는 순간까지 체공에서 거품이 나오고 있었고 도로에 사람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중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故문재학 열사님이 산화하신 장면이 내 머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당시 그 자리엔 반 먹다 남은 단팥빵이 있었다고, 단팥빵마저 다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해설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진 속 장면은 해설사님의 말 그대로였다. 피가 흥건했고 그 옆엔 반밖에 남지 않은 단팥빵이 있었다.

 

보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온몸에서 땀이 났고 눈물도 조금 났던 것 같다. 설명을 듣고 책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미하게 상상하던 참혹한 장면들이 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난 뒤, 뭐라도 홀린 듯 도청 3층, 故문재학 열사님과 故안종필 열사님이 산화하신 그곳으로 갔다. 아무 전시도 없고 아무도 없는 3층, 엘리베이터 왔다 갔다 하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그분들을 마주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까 사진 속에서 본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고 정말 그때로 돌아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3분 정도는 그 자리에서 있었던 것 같다. 내려가고 싶었는데 몸은 움직이질 않았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며 3층에서 내려왔다. 그저 사진만 봤을 뿐인데도 제정신이 아닌데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며 살아왔을까 생각이 들었다. 1층 광장으로 와서 분수대를 보며 물이 멈춘 이곳에서 태극기를 들고 싸웠을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분수대를 보며 <소년이 온다> 속 문장이 떠올랐다. 아름답게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보니 분노했을 그녀의 마음에 공감이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게 아닌 혼자 버티기 위해 쓰여진 당시 시민들의 일기장, 경비실에 있던 탄흔 자국, 산화하신 분들 자리에 세워진 위령비, 분수대 옆 상무관과 5시 18분마다 울리는 시계. 모든 것들이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제라도 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월 어머니의 집에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의 이야기는 다른 지역에 살다가 출산한 자신을 보기 위해 광주로 내려와 총에 맞아 집에서 돌아가신 남편분 이야기였다. 그분의 딸은 자기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거라 하셨다 한다. 자기가 5월 18일에 태어나서라고, 자기가 아니었으면 아빠가 안 죽었을 거라고 하셨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무고한 시민들을, 한 가족의 가장을 앗아간 5.18에 더욱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들은 하나같이 맑고 순수하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시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어머님들을 보니 이런 소녀들에게 아픈 기억을 안겨준 나라에게 더욱 화가 났다. 잊지 말아달라고, 주변에 알려달라던 어머니들의 말씀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절대 잊지 않을 거고 주변에도 많이 알릴 거라 약속하고 어머니들께 인사를 드렸다.

 

마지막 날은 국립 5.18 민주 묘역에 들렸다. 대표로 참배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도청에서 본 사진 속 그분들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손을 들었다. 묘역에 도착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분향대로 가 하얀 장갑을 끼고 초를 넣었다. 초가 타들어 가는 냄새는 마치 그분들의 외침 같았다. 맡을 때도 세지만 끝 향이 오래 남는 그 향이 5.18 당시 타올랐던 용기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날의 결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를 잊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마음에 안으며 참배를 드렸다.

 

우리의 5.18 역사 배움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아가며 많은 걸 느꼈고 그 당시 사람들을 만나고 온 것 같은 배움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으로 느끼며 아파했다. 역사를 배우며 많은 다짐을 했는데, 그분들이 남겨주신 나라인 만큼 의미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배웠던 역사를 돌아보며 광주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안고 돌아왔다.

 

2. 우리를 돋우는 과정

 

5.18 역사를 배우며 알아가는 만큼, 여행 속에서 우리도 우리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를 알아갔다. 매일 붙어있는 친구들이지만 여행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첫날 새로운 조합의 모둠으로 오후 활동 시간에 짧게 마을 투어를 했다. 수양버들 아래서 서로의 손목에 토끼풀 팔찌를 해주던 중 한 친구가 시든 꽃을 들고 있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새로 꺾어서 팔찌를 해주려던 중 그 친구는 “왜 살아있는 애를..” 하고 말했다. 순간 ‘난 왜 살아있는 꽃을 꺾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 싶은 생각이 들며 풀꽃마저 소중하게 여기는 그 친구를 본받고 싶다고 느꼈다. 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그 안에서 나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참 감사했다.

 

둘째 날 오후 기획활동 시간에 우리는 2시간 동안 경도를 했다. 긴 공원 안에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껏 뛰고 소리치며 놀았다. 모두 마음을 내려놓고 뛰어놀며 지금까지 못 봤던 친구들의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다. 예상외로 달리기가 빠른 친구,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활발한 모습들, 샌들에 원피스를 입고도 나보다 더 잘 뛰어다니는 길잡이

이런 모습을 나누며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경도 후 다 같이 땀을 흘리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하루닫기를 하는 모습은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몸이 아파 먼저 간 친구와 전화로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날을 나누고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의 하루닫기는 다시 날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여행에 와서 좋다는 마음, 돌아갈 때면 바뀌어 있겠지 했던 내 안일한 생각을 바꾸게 해준 한 친구의 질문이 있었다. “분명 돋움 여행인데 왜 역사만 배우고 있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마저도 돋움을 위한 여행을 기대하고 왔는데 이런 질문을 어떻게 한 번도 안 해봤을까, 왜 아무 질문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정대로 하고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실망한 부분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전환여행 때처럼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주어진 활동이 있으니 난 이 활동 안에서 최대한 스스로 돋움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쉽지 않았다. 역사를 배울 때 다짐과 깨달음, 배움은 많았지만 나에게 있어 돋움은 크지 않았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안에서 돋움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 답을 내리기엔 조금 일렀던 터라 질문에 대한 답은 잠시 비워둔 채 활동에 집중하면서 나의 돋움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의 배움을 위해 노력했다. 매일 자기 전 오늘 내가 배운 건 무엇인지, 그걸 통해 깨달은 건 무엇인지 돌아보며 밤마다 생각을 헤매다 잠에 들었다.

 

역사 공부 등 주어진 일정뿐만 아니라 숙소에서 있었던 일들도 하나의 활동 같았다. 아마 계획된 배움보다 여기에서의 배움이 날 더 성장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친구들과의 돋움의 과정 속 많은 영향을 준 건 숙소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그중 하나는 여행 중반부 또 다른 친구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에 부엌에서 세 친구들과 대토론(?)을 벌인 것이었다. 그 친구와 남은 여행을 함께하고 싶었고 우리 안에서 그 친구의 존재가 꽤나 크기도 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만 할 수 있는 배움의 과정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설득했다. 그 친구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기에 결국 올라가게 되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느꼈는지 하루 뒤 그 친구는 다시 광주로 오게 되었다. 그 친구의 마음이 뒤늦게나마 바뀐 이유 중 하나는 그 친구에 대한 우리의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날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고 결국엔 전해질 수 있었다. 우리의 진심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용기가 합쳐져 마지막 날 함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마지막 하루 닫기 시간. 마니또를 공개하고 서로를 그려준 그림을 나누는 시간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의 특징이 살아있는 그림을 나누며 감탄하고 함께 웃었다. 다같이 둘러앉아 시끌시끌하게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루닫기를 할 때 경청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며 오해를 푸는 것, 짧은 하루닫기 시간 속의 그 모든 게 우리가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온전히 성장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다. 들뜬 분위기에 취해 나는 내 스스로 후회되는 행동을 했다. 길잡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것 같은 잘못된 판단을 했고, 여기에서 나는 반성하는 것이 아닌 자책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리 크게 자책할 문제까진 아니었는데도 난 계속 거기에 꽂혀 있었고, 그 때문에 반성이 늦춰졌을뿐더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그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조차도 내가 혼란스러울 때 내 잘잘못을 짚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더 쉽게 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어지러운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수용해 주는 길잡이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자유롭게 울고, 웃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날 성장시켜주는 사람들 속에서 마음껏 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느꼈다. 이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리다웠고 우리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전환 여행 때처럼 스스로를 탐구하고 마음의 전환을 가지는 여행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다고 해서 꼭 성장이 없는 여행은 아니었다. 이 안에서 우리가 성장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완전한 돋움은 아니어도 ‘돋움의 과정’을 배웠고 이 과정은 앞으로 살아가며 내게 조금조금씩 돋움을 줄 것이다. 이 안에서 돋움을 마치고 오는 게 아닌 돋움의 과정을 준비하는 여행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돋움여행을 마친다.(오디세이민들레12기 소망)

 

a26ef414bc5c9.png

1c4ccacc6dbc2.png

9425fe3bb69e2.png

a58423c87bf6c.png

c6f806e42d830.png

a03784ae51215.png

9eea19f1e563f.png

a7ee08139c95f.png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8길 30  /  대표 전화번호 : 02-2256-4120

팩스:(교무실) 02-2256-6741, (행정실) 02-2256-6739

2023 Odyssey School. ALL RIGHT RESERVED. SITE BY 스튜디오산책